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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것들

나쓰메 소세키 수필

나쓰메 소세키는 1910년 6월에 위궤양으로 나가요 위장병원에 입원했다가 같은 해 8월부터 요양을 위해 도요조의 권유로 이즈 슈젠지의 기쿠야 여관에서 전지요양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병이 깊어져 800g이나 되는 피를 토하고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를 ‘슈젠지의 대환’이라고 하는데 이때 일시적인 죽음을 체험한 일이 이후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사건 가운데 하나였던 슈젠지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수필이 바로 이 「생각나는 것들」로, 같은 해 10월에 용태가 안정되어 나가요 병원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이듬해 2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1910년 6월에 위궤양으로 나가요 위장병원에 입원했다가 같은 해 8월부터 요양을 위해 도요조의 권유로 이즈 슈젠지의 기쿠야 여관에서 전지요양을 했다. 그러나 거기서 병이 깊어져 800g이나 되는 피를 토하고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를 ‘슈젠지의 대환’이라고 하는데 이때 일시적인 죽음을 체험한 일이 이후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사건 가운데 하나였던 슈젠지에서의 일들을 기록한 수필이 바로 이 「생각나는 것들」로, 같은 해 10월에 용태가 안정되어 나가요 병원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이듬해 2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나쓰메 소세키
도쿄 명문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긴노스케. 당시 어머니는 고령으로 ‘면목 없다’며 노산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12세에 도쿄 제1중학교 정규과에 입학하지만 한학 · 문학에 뜻을 두고 2학년 때 중퇴, 한학사숙에 입학해 이후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유교적인 윤리관, 동양적 미의식, 에도적 감성을 기른다. 22세 때, 문학적 · 인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마사오카 시키와 만나게 되지만, 잇따른 가족의 죽음으로 염세주의, 신경쇠약에 빠진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서 영어 교사로 있다가 1895년 고등사범학교를 사퇴하고 아이치 현의 중학교로 도망치듯 부임해 간다.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영문학 연구에 거부감을 느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된다. 귀국 후 도쿄 제국대학 강사생활을 하다 또 다시 신경쇠약에 걸리자 강사를 그만두고 집필에만 전념하던 소세키는 190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 직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계속되는 신경쇠약, 위궤양에 시달리다 1916년 12월 9일에 대량의 내출혈이 일어나 『명암』 집필 중에 사망했다. 마지막 말은 ‘죽으면 안 되는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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